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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쓱한호박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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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영조 그리고 고종은 왜 이른 나이에 기로소에 입소했는지요

70세가 넘은 정이품이상의 문관과 60세 이상인 임금이 입소할 수 있다는 기로소에 숙종의 59세, 영조와 고종은 51세로 60세가 되기 전에 기로소에 입소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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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원로대신 만이 입소할 수 있는 기로소에 들어가겠다고 아우성 친 임금이 두 분 있었습니다.

      숙종(1661~1720, 재위 1674~1720)과 그 아들인 영조(1694~1776, 재위 1724~1776)입니다.

      더욱이 이 두 분은 70세는커녕 60세도 안된 59세(숙종), 심지어 51세(영조)에 기로소 입소를 강행했습니다.

      숙종·영조 부자는 왜 말도 안되는 생떼를 쓰면서까지 기로소 입소를 ‘소원’했는지에 대해서는 갖가지 해석이 나오지만 역시 건강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 임금들의 평균수명은 48세(한국나이) 정도였으며

      27명 중 환갑을 넘긴 이는 태조(74)·정종(63)·광해군(67)·숙종(60)·영조(83)·고종(67) 등 6명입니다.

      숙종의 경우 병치레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기로소에 입소하기 2년 전인 57살 때는 다리가 저리며 양쪽 눈이 어지럽고 잘 보이지 않는 증세에 시달렸다고합니다. 세자(경종)에게 대리청정을 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도하지요.

      숙종이 기로소에 입소한 직후 급격하게 쇠약해졌습니다. 1720년(숙종 46) 1월 육순을 맞이했는데요.

      그러나 그 해가 마지막이 됐죠. 6월8일 승하할 때까지 6개월 이상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숙종은 60을 맞이하기도 어려운 몸 상태를 알고 기로소 입소를 강행한 것 같습니다.

      영조는 특히 기로소에 입소할 무렵인 50세 때는 담증과 근육통, 어지럼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영조가 “선조(숙종)의 고사를 따르려면 59세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어찌 될 줄 알겠느냐”고 조바심을 낸 겁니다. 또 영조는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1670~1718)의 소생이었습니다. 출생 콤플렉스가 만만치 않았죠.

      게다가 이복형(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이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영조는 기로소에 입소한 부왕 숙종의 모습과 자신을 대비시키면서 왕권의 정통성을 입증하려 했다는 의미도있다고합니다. 이로서 두 임금이 59세, 51세에 기로소에 입소하겠다고 생떼를 썼는 이유를 짐작할 수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은 일찍이 12살 때부터 임금이되다보니

      (즉위한지 39년됨)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서

      일찍 기로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왕의 경우 특별하게 나이를 낮춰 환갑인 60세를 넘으면 기로소에 입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태조는 60세가 되자 친히 기영회에 입소했지만 그후 왕들이 오래 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게 되자 숙종과 영조는 60세가 되기도 전에 미리 앞당겨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의 나이로 1902년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즉위 39년째 대던 해로 12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어 아버지 대원군의 섭정,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나라의 간섭, 청일전쟁, 아관파천, 대한제국 수립의 온갖 수난을 겪은 고종황제의 기로소 입소는 황태자를 비롯해 신하들이 경하할 일이었으므로 건의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숙종, 영조, 고종이 이른 나이에 기로소에 입소한 이유는 각각 다릅니다.

      숙종은 18세 때부터 20년 이상의 장기전을 치르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영조가 51세에 기로소에 입소한 것은 그가 즉위 후 중국과의 대치, 농약 집행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고종은 조선 말기에 일어났던 동학 농민 운동과의 대치, 일본의 침략 등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록 보존과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인 기로소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왕실의 기록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노년에 이르러 체력적으로 힘들어졌거나 힘든 상황에서 기로소에 입소하게 된 것입니다. 이외에도 왕실에서는 기록 관리를 위해 장기간 기로소에서 근무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기로소(旗幟所)는 조선시대에 왕실 및 관리들이 장기적으로 근무하는 곳으로, 경복궁 남쪽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왕실 및 관리들이 경비, 경찰, 소방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왕실이나 관료들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기로소에 입소하여 근무하였습니다.

      숙종, 영조, 고종 등이 60세가 되기 전에 기로소에 입소한 이유는 이와 같이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왕좌에 앉은 왕의 위신과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기로소 근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