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전래동화에 보면 '고려장'이라는 문화가 나오는데. 고려장은 언제부터 생겨났던 것인가요?
예전 전래동화에 보면 '고려장'이라는 문화가 나오던게 기업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문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고려장은 언제부터 생겨났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은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이 지여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닌,.현대장례에 들어와있는 고인의 수의,
완장등도 일본의 잔재문화일 뿐입니다ㅜㅜ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본넉으로 효를 중요시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장이라는 것은 일제시대 우리나라 민족성을 말살시키기 위한 것으로 지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은 설화이며 해당 설화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장이라는 용어가 해당 설화와 결합한 것은 19세기 말~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 풍습이 있던 고구려 때 박정승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 고 말합니다.
박정승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몰래 국법을 어기고 노모를 모셔와 봉양을 합니다.
그 무렵 중국 수(隋)나라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끌고와 어느쪽이 어미이고 어느쪽이 새끼인지를 알아내라는 문제를 내며,
못맞히면 조공을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박정승에게
노모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말을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란다."
고구려가 이 문제를 풀자 중국은
또 다시 두번째 문제를 냈는데
그건 네모난 나무토막의 위아래를 가려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노모는
"나무란 물을 밑에서부터 빨아올린다. 그러므로 물에 뜨는 쪽이 위쪽이란다."
고구려가 기어이 이 문제를 풀자
약이 오를때로 오른 수나라는
또 어려운 문제를 제시했는데
그건 재(灰)로 새끼를 한다발 꼬아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나라에서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는데
박정승의 노모가 하는 말이,
"얘야, 그것두 모르느냐?
새끼 한다발을 꼬아 불에 태우면
그게 재로 꼬아 만든 새끼가 아니냐?"
중국에서는 모두 이 어려운 문제들을 풀자 “동방의 지혜있는 민족이다.”
라며 다시는 깔보지 않았다 합니다.
그리고 당시 수나라 황제
수 문제(文帝)는
“이 나라(고구려)를 침범하지 말라.”
고 당부합니다.
그런데도 이 말을 어기고 아들인
수 양제(煬帝)가 두 번이나 침범해와 113만명이 넘는 대군(大軍)으로도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에게 대패하고는 나라가 망해 버립니다.
그 다음에 들어선 나라가 당(唐)나라인데 또 정신을 못차리고 고구려를 침범하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깨지고 당시 황제인 당 태종(太宗)은 화살에 눈이 맞아 애꾸가 된채로 죽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모의 현명함이 세번이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왕을 감동시켜 이후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리스의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국가나 사회에도 지혜로운 노인이 필요합 니다.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 대신 나이는 기억력을 빼앗은 자리에 통찰력이 자리 잡습니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은 누구나가 노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천재가 경륜(徑輪)을 이기지 못하고
경륜이 연륜(年輪)을 이기지 못한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유래’, ‘기로전설(棄老傳說)’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 널리 분포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에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를 산중에 가져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한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일흔 살이 되었으므로 늙은 아버지를 버리기 위하여 그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는, 약간의 음식과 늙은 아버지를 지고 왔던 지게를 놓아둔 채 되돌아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를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다시 지고 오기에, 그는 아들에게 왜 지게를 다시 지고 오느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이 “저도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에 그는 크게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간 뒤에 잘 봉양하였다. 그로부터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내력을 말한 설화 중에 널리 전승되는 것으로서 이와는 다소 다른 형태의 이야기도 있다.
고려장이 국법으로 정해져 있는 나라에 사는 어느 효자는 아버지(또는 어머니)가 늙어 고려장을 할 시기가 되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서 아버지를 숨겨 두고 봉양하였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어려운 문제를 내어 풀기를 요구해 왔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으므로 온 나라가 근심에 싸였다. 그 때 늙은 아버지가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어서 무사히 어려움을 해결하자, 나라에서는 이로부터 늙은이도 쓸모가 있음을 깨닫고 악습을 폐지하였다는 것이다.
앞 이야기는 불전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조(棄老國條)의 설화와 유사하며, 뒤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孝子傳)」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 설화는 중동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된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설화는 고려장의 폐지라는 동일한 결말을 보여 주지만, 그 방법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앞 이야기가 아들의 불효를 강조하면서 손자의 지혜를 해결의 계기로 삼고 있는 것에 비하여, 뒤 이야기는 노부모의 지혜에 의하여 국가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아울러 고려장도 폐지됩니다. 따라서, 두 이야기는 지혜를 내는 주체자는 다르지만, 지혜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노인을 버리는 풍습은 인간을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 위주로 평가하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반박하는 아들의 재치나 노인의 지혜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깊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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