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유정난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유정난은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불과 2년 만에 급서하고 단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면서 촉발되었다고 합니다.
세종 때부터 급격히 신장된 신권은 단종의 즉위와 함께 더욱 강해졌으며,
실제 문종은 유명으로 황보인·김종서 등 대신들에게 어린 단종의 보필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문종의 뒤를 이은 단종은 즉위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세종과 문종의 유명을 받든 고명대신 김종서가 조정의 인사권 및 정권과 병권을 쥐고 섭정을 하였습니다. 수렴청정을 통해 왕실의 중심점 역할을 해야 할 대비와 대왕대비가 부재한 상황에서, 세종의 영특한 아들들은 세종대에 각종 정치, 문화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각자 만만치 않은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으며, 조정의 신료와 왕실, 심지어 환관, 나인까지도 이들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동생 임영대군 그리고 한명회, 유응부 등을 우군으로 두었고, 안평대군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세 아들과 금성대군의 지지를 받으며 수양과 대립했습니다. 이들이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김종서와 그를 따르는 신하들은 또한 막강한 세력을 이루며 대군들을 견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