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09명을 출산 , 이 중 제사를 지낼수 있는 남자아이는 1.25명 수준이었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아 아들이 더 있어도 아들을 더 원했으므로 출산율이 높아졌고, 종법 질서가 강화된 18세기 아들로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성에게 지어지면서 독특한 문화적 행위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출산율은 17세기를 기점으로 하락, 이는 여성의 재가 금지가 대표적으로 성을 금기시하는 풍속은 집의 구조에도 영향을 주어 부인이 지내는 안채, 남편이 주로 거처하는 사랑채로 구분, 이때문에 임신을 위해 씨 내리는 날 을 정해 부인과 남편이 만나는 것이 조선 사회의 암묵적인 관행이었고, 양반 여인들의 재혼금지는 평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출산율 급감의 원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