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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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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활자는 서양보다 빨랐으나 출판의 역사가 늦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금속활자의 개발은 서양보다 빨랐다고 하는데


이 활자의 발명이 조선에서는 출판 문화의 발달로는 이어지지 못한 점이


어떠한 부분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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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zudaish
      zudaish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대왕 시기 전에는 양반 아니면 글을 배울 수 없었고 먹고살기에 바빠서 따로 학문을 배우거나 연구할 시간이 ㅇ벗었습니다.

    • 조선 시대에 금속활자를 개발하고 활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한 출판 문화가 서양에 비해 늦게 발달한 이유는 몇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사회적, 정치적 요인: 당시 조선 사회에서 지식은 상류층과 관료층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그들은 주로 한자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금속활자 기술은 훈민정음(지금의 한글)을 주로 인쇄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당시 사회에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여겨져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한글 활자의 확산이 제한적이었을 수 있습니다.

      2. 경제적 요인: 활자를 사용한 인쇄 기술은 출판물을 대량 생산하는 데 유리하지만, 초기에는 인쇄 기술을 도입하고 활자를 제작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대량 출판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습니다.

      3. 기술적 요인: 조선의 활자 기술은 뛰어났지만, 서양의 활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기술을 개선하고, 효율화하고, 더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의 활자 기술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디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조합되어 조선에서의 출판 문화 발달이 늦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의 금속활자 기술은 인쇄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훈민정음의 보급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추가적으로 청주 박물관에 있는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 1377년에 조선 초기의 백성들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은 초기 한글, 즉 훈민정음의 가장 먼저 인쇄된 예시로, 언어학과 출판의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에는 불교적 가르침과 함께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당시 사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