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법흥왕의 측근 이었던 이차돈은 법흥왕의 불교 공인 의도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통 신앙을 고수하던 귀족들의 강한 반발로 불교 공인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차돈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자청했습니다. 이차돈은 자신이 처형 순간 일어날 신비스로운 일을 통해 귀족들을 설득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차돈은 527년 처형되었고 그의 목이 베어지는 순간 흰피가 솟구치고 꽃비가 내리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 공인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에 기술되어 있으며, 이차돈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신라 헌덕왕 시기에 제작된 이차돈 순교비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