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의 시계는 18세기 기본권 논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 양심있는 법조계 인사들의 고백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고자 하는 투쟁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안정된 나라에서도 기본권은 기득권의 일방적 시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이들은 생명을 건 싸움을 합니다. 이런 투쟁과 싸움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만 가능할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짧은 민주주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출발에서부터 제국주의 방식에 민주주의 옷을 입혀 놓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검찰의 일방통행입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권력은 권력이 서로 견제하면서 민주주의는 작동되며, 민주주의가 작동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 작동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기본권이 무엇인지조차 배우지 못합니다. 특히 학교에서 법대 지망생 외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정치를 알 수도 없고 관심을 가지면 별종 취급을 당합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인간의 기본권이 충족되지 않는데 인간의 행복이 보장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백성의 기본권은 헌법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서 헌법을 읽어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정치에는 무지한 백성이되고, 정치참여는 정치인만 하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 결과 법 기술자들은 법으로 백성들을 억압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백성들이 인간의 기본권만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됩니다.
주권자 인민이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형성한다는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임으로 정치 참여는 필수입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법의 무지에서 나오는 일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자유의 양과 질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살아있는 법의 정신이 자유의 양과 질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