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927년 경주의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되고 난 다음, 경순왕은 견훤에 의해 옹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931년 왕건이 경순왕을 알현했는데, 수십 일을 왕경에 머물면서도 왕건은 부하 군병들에게 군율을 엄격하게 세워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에 신라조정에서는 견훤이 왔을 때에는 시랑과 범을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후백제의 견훤이 장남 신검을 비롯한 형제들의 음모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피난하고 고려 태조의 도움으로 개경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에 놀란 경순왕은 더 이상 고려의 보호국의 처지에서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판단을 내렸던것 입니다.그래서 935년 경순왕은 신하들과 더불어 국가를 고려에 넘겨줄 것을 결의하고, 왕건에게 항복하는 국서를 전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