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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15

중국 상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중국 상나라에서 제일 유명한게 주왕과 달기 이야기 잖아요.

주지육림이라는 단어가 이때 생긴 단어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상나라의 다른 역사 이야기는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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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은 기원전 1600년 탕왕이 세우고, 기원전 주왕 때 1046년 주나라 무왕에 멸망하였습니다.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은 달기라는 미녀에게 빠져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상나라는 실체가 확인된 중국 문명의 주인공으로 갑골 문자를 사용하였습니다. 갑골 문자는 갑골이라는 거북의 뱃가죽 뼈, 짐승의 뼈로 점을 쳐 함께 기록한 것으로 한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외 상나라는 순장의 풍습과 달력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상나라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보다는 늦었지만 뛰어난 청동기 기술이 발달하였습니다. 따라서 상은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어 무장하고, 전차를 도입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어 주민 부족을 제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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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나라는 은허(殷墟)를 주요 도시로 건국되어, 약 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 무렵까지 존재했던 국가이다. 주로 은(殷)이라고도 많이 불리지만, 적어도 상나라 사람들 자신들은 스스로를 은나라 사람이라고 부른 경우는 없다. 은이라는 통칭은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고대여서 당시 국가의 실질적인 인구는 수도에 몰려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상과 은 두 가지 표현이 혼용되었고, 상나라 이후 시대부터 유명 학자나 정치인들이 상나라 시대 이야기를 할 때 '과거 은 시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과거 은의 누구는 이런 말을 했었다.'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바람에 중국 역사 기록에 상나라라는 표현보다 은이라는 표현이 훨씬 심하게 난무하면서 오해가 퍼진 것이다.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상인'이라는 말이 '상나라 사람'에서 나온 말이므로 상나라라는 표현이 그렇게 안 쓰였던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고도로 발달한 청동기 기술을 가졌으며, 기원전 12세기 무정(武丁)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주변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키며 영향력을 키웠으나, 지나친 인신공양으로 인한 반발과 동방정책 등으로 인해, 기회를 엿본 주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만다.

    한때는 거의 전설상의 왕조로 여겨질 정도로 실체가 의문시되었으나, 갑골문의 발굴과 해석이 활발해지고, 은허 유적 등이 발견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존체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다. 문헌과 유물로 확인할 수 있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왕조 국가.

    상나라에서는 대규모의 인신공양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갑골문과 발굴된 해골 등으로 인해 확인된 사실로, 이 시대는 아즈텍 문명에 버금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인신공양이 벌어졌다. 순장 제도 등의 모습은 상나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기는 하나, 규모 면에서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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