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창경궁은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離宮)으로서 활용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그 후 이괄의 난으로 내전이 완전히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전각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인조 11년 인정전 하나만 남아있던 창덕궁보다 먼저 복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창경궁은 비교적 화재 사고가 잦았습니다.
숙종 때는 장희빈이 창경궁에서 사약을 마시고 죽었고 영조 때는 휘령전(문정전) 앞마당에서 사도세자가 쌀 뒤주 속에 갇혀서 죽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1800년 6월 영춘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