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오사화는 한 마디로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정치 , 당파 싸움 이였습니다. 1498년 『성종실록』 편찬 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중국 秦나라 때 項羽가 楚의 義帝를 폐한 것과 단종을 폐위, 사사한 사건을 비유해 은근히 단종을 조위한 글)과, 훈구파 이극돈(李克墩)이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국상 때 전라감사로 있으면서 근신하지 않고 장흥(長興) 기생과 어울렸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을 사초에 올린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신진사류에 대한 참혹한 박해를 빚어내게 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