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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정리수기
신박한정리수기23.10.09

창한 발해가 멸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혹시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인한 것인가요?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는 고구려 다음으로 큰 영토를 이루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번창한 발해가 멸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혹시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인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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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적으로 거란과의 전쟁으로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9세기 해동성국의 번영을 구가하던 발해가 거란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지배층 사이의 내분이 주요한 멸망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석연치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발해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마지막 사건이 거란의 침입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925년 9월 서방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야율아보기는 12월에 ‘두 가지 일 중 하나(서방 원정)는 이미 완수하였고, 발해는 대대로 원수인데 아직 갚지 못했다.’는 조서를 내리며 서방 원정을 성공으로 이끈 자신감 속에 발해와의 전쟁에 나섰습니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 야율아보기는 12월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인 목엽산에서 제사를 지냈고, 다시 오산에서 청우와 백마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산갈산에서 귀전을 쏘며 출정을 알렸으며, 상령을 거쳐 발해의 부여부를 포위하여 부여성을 빼앗았습니다. 발해의 노상이 이끄는 3만 명의 군사는 거란의 1만 기병과 맞닥뜨렸으나 패배하였다. 부여성이 함락되자 거란군은 바로 발해의 수도인 홀한성으로 진격하였고, 결국 대인선은 항복하였습니다. 항복 후에 대인선은 흰 옷을 입고 300명의 신하들과 함께 항복 의식을 치뤘습니다. 야율아보기는 발해에 군현을 설치하였다고 ㅎ바니다.

    야율아보기와 거란의 군사들은 9일 간 1,000리를 이동하여 부여부에 이르러 포위하고 3일 만에 부여성을 함락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6일 만에 발해의 수도 홀한성에서 대인선의 항복을 받아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너무 쉽게 무너진 현실을 믿기 어려웠던 것인지 대인선은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미 기울어진 국운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화산 폭발 때문이라는 설이 나왔습니. 이 설은 일본 도호쿠대(東北大)연구소가 주장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지난 9세기 ~ 10세기 사이에 약 100년에 걸쳐 기원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산 폭발이 두 차례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