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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곤잘
라울곤잘23.10.24

일본에 보낸 조선통신사는 어떠한 일을 하였나요?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의 외교사절단으로요.

조선통신사는 일본에가서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왜 일본에 간 것인지도 같이 답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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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국교 회복을 위해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습니다. 이들은 양국 간의 문화교류와 평화유지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통신사는 조선 후기에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을 말합니다. 당시 어휘 '통신'은 '국왕의 뜻을 전함'이라는 뜻이였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에 파견한 '일본국왕사'의 일본과 맞추기 위해 후대에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라고 부르고 있을 뿐 정확한 당대의 공식 명칭은 그냥 通信使(통신사)로, 조선시대에

    '조선 통신사'라는 호칭을 조선측이 스스로

    쓴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파견된 통신사라는 것을 교육하기 위해 후대에

    '조선'이라는 말이 앞에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신사는 사절단이라 볼수 있습니다. 두 나라간의 믿음을 나누는 것이지요. 태종 4년때 처음 조선이 일본에 보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중단 되었습니다.

    사절단이다 보니 그때마다 목적이 좀 달랐는데, 임진왜란 전에는 왜구의 노략질 단속하는게 가장 많았고, 임진왜란 후에는 우리 포로도 데려오고 추가적인 전쟁도 막는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보통 다녀오는데 10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하고, 문화적 교류도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일 국교가 수립된 뒤 1636년부터 1811년까지 9회의 통신사는 에도 막부의 새 쇼군이 취임할 때마다 그 권위를 국제적으로 보장받기를 원하는 막부의 요청으로 취임을 축하하는 것을 형식적인 임무로 삼아 파견되나 그 외에 당시 정치, 외교적인 현안에 관련된 협상을 진행, 조선 후기의 통신사는 전기와 달리 조선과 일본이 함께 청나나라는 신흥 대륙 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서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신사는 귀국 후 사행에 대한 기록이자 견문록인 사행록을 남겼는데 현존하는 통신사의 사행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초대 통신사 방문때 부사였던 경섬이 쓴 해사록입니다. 다만 통신사 이전에도 일본을 다녀온 사절단은 많았으므로 이들의 사행록도 남았으나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사행옥은 정몽주의 정포은봉사시작이며, 정몽주의 경우 1377년 9월부터 1378년 7월까지의 사행 기록을 남겼는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협조를 얻으려 다녔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새롭게 에도 막부가 들어섰습니다. 조선은 포로 문제 등의 이유로 다시 에도막부와 기유약조를 맺고 교섭을 허용하였습니다.(1609)

    또한 일본은 조선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에도 막부의 쇼군(將軍)이 바뀔 때마다 그 권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조선에 사절의 파견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에 조선에서는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파견하였습니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습니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울 수 있었으며, 막부의 권위를 대내적으로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