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전투에서 왜 계백이 지휘했나요?
당시 기록상으로 계백의 지위는 달솔이었고 그 전투에는 달솔 위의 계급인 좌평 충상이 있었는데도 왜 계백이 지휘관으로 전투를 지휘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산벌전투는 백제 의자왕 때인 660년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벌인 큰 전투를 말합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백제군 5천 명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고, 지휘관도 좌평 충상, 상영 대신 계백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충상, 상영은 명목상 지휘관이고 실 지휘는 계백이 맡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의직과 주 병력은 백강으로 보내고 상대적으로 약한 신라군에게는 좌평 다음가는 달솔 직급의 계백을 보냈으며,
계백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좌평인 충상, 상영을 함께 보낸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산벌은 백제 수도 사비성(부여)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신라는 사비성으로 가기전 당나라군과 합류하려 했고 백제는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 전투를 걸어야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은 신라군의 사비진격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당군과 신라군은 나당연합군을 결성해 사비성을 공격 백제는 멸망합니다. 계백(달솔)보다 상위 직급인 충상 상영(좌평)이 존재한데서 착안해 이들이 계백과 대등하거나 더 많은 병력을 통솔하여 5000명×3=15000명설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백제군은 5000명이라는 기록이 있고 지휘관도 좌평 충상 상영 대신 계백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충상 상영은 명목상 지휘관이고 실 지휘는 계백이 맡았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