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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2.18

고려, 조선시대에도 일반 백성들을 위한 대부업체같은 게 있었나요?

과거 일반 백성이 혼인 등의 이유로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한데 융통할 곳이 없으면 혹시 현대 대부업체같은 곳에 돈을 빌렸나요? 아니면 관청에서 돈을 빌려주는 기관이 있었나요? 만약 고리대금에 대해서는 나라에서 구제해주기도 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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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토바고트리니다
    토바고트리니다24.02.22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의 금융 활동이 성종금지 등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을 위한 대부업체와 같은 형태의 금융 기관은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금융 활동은 지방 관아에서 이루어졌고, 주로 지방 관아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간편 대출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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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 전당이라는 용어는 고려사 식화편 차대조에서 처음 볼 수 있으며, 전당포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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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고려 중기부터 농장에서 장리(長利)라 하여 10두에 3두 내지 5두의 고리대금업을 했단 기록이 있고.

    사채란 단어자체가 고려시대에 생긴 거에요 공공기관의 빚(채)인 공채가 아니라

    개인끼리적인 빚()만들어서 사채인거죠

    조선의 대출 제도는 급채(給債) 방채(放債) 흥리(興利) 식리(殖利) 등등 다양하게 있었다고 전해지며

    대출이자를 ‘이식(利息)’ 고금리를 ‘장리(長利)’라 불렀다고 합니다

    대출 알선 전문가인 흥리인 또는 식리인 이란 전문직업도 있었다고 하죠

    조선은 거의 대출 왕국이라 승려, 사대부 서얼 가릴 것 없이 어느 계층이나 대출업을 했었다고 전해집니다

    금융업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이자도 맘대로고 추금도 맘대로 인데

    체면이라도 걱정해야 하는 공채완 다르게 사채는 아예 검계같은 불법 조폭들이 관리해서

    빌렸다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염왕채(염라대왕사채)라고 불렸다고 하고

    사채업자들이 날뛰어서 걱정이란 기록이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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