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당시 정권의
경제적, 군사적 이유가 배경이라고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차관 마련 등의 경제적, 군사적인 이유로 집요한 파병제안을 했으나 당시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도발할 가능성과 중국, 소련 등의 공산권 국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래 구상했던 SEATO(동남아시아조약기구)를 중심으로 구상했던 베트남 지원 계획이 프랑스와 파키스탄의 반대로 어려움에 빠지자, 1964년 5월 9일 《남베트남 지원》을 호소하는 서한을 발송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과 맞물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1964년 7월 31일에 국군의 베트남 해외 파병을 위한 제1차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이 공산침략을 경험한 국가로서 아시아지역의 안보와 자유수호를 위한다는 명분도 있었습니다. 한편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김준연 등은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였으나 반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