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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4.03.19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사용했던 마패는 언제부터 사용했나요?

마패는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상징물과 같은 물건으로 현대 사극이나 영화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마패가 사용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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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0년(태종 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어 1414년에 공역서인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규정이 그 뒤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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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가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후기 부터로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말의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었는데 이때문에 허락받은 관리만 말을 사용할수있도록 마패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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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의 사용은 고려 후기 원(元)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말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었고, 이 때문에 허락받은 관리만이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마패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처음에는 마패를 나무로 만들었지만 쉽게 부러지거나 손상되자 1434년(세종 16)에 철로 만들어 사용했고, 이후에는 구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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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기의 마패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파손이 심해 1434년 2월에 철로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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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는 사실 암행어사의 상징이 아니라

    말을 빌려주는 증서, 그러니까 일종의 기차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멀리 출장가는 관리들은 모두가 쓸 수 있었습니다.

    마패가 암행어사의 상징처럼 된 것은,

    암행어사는 일하러 가기 전에 임명장인 봉서와

    메뉴얼인 사목 그리고 마패를 받았는데

    봉서는 왕이직접 주는 문서라 함부로 보여줄 수 없고

    사목은 책이라서 들고다니기 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패가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시기 원나라가 말사용을 통제하면서

    권리만 말을 쓸 수 있도록 원종 때 처음 마패가 개발되었지만

    그때는 빌려줄 말을 기르는 역참이 충분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 태종 10년부터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는 목제였지만 세종대왕님이 철제로, 성종이 동제로 바꾸었다고 전해지구요

    마패에 새겨진 말의 수가 그대로 말을 빌릴 수 있는 최대수

    다시말해서 내가 출장갈때 데리고 갈 수 있는 하인 수였는데

    왕은 말 10마리, 세자는 9마리 하는 식으로 계급간 분류가 있었고

    암행어사는 2~5정도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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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마패는 역참과 함께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 기원은 신라 소지왕 487년 3월에 우역이라하여 사방에 소관 관아를 통제할 수 있도록 통신소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고려거란전쟁에서도 강감찬

    이 마패를 보여주고 말을 갈아타며 흥화진으로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마패를 내려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고려 원종15년 때부터입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눌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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