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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빙
비비빙23.06.25

삼국시대때에도 신분제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삼국시대때 고구려 백제 신라때 각나라별로 신분제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각나라별로 신분제도는 어떻게존재했는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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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의 신분 제도는 크게 귀족, 평민, 노비로 나뉘었고, 조선 시대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왕족은 성골(聖骨)과 진골(眞骨)로 구분되며, 왕족이 아닌 신분은 두품(頭品)으로 구분 진골 바로 밑에는 귀족 신분이었던 6두품(六頭品)

    5두품·4두품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고구려지배세력

    5부족과 대가((大加) 사자(使者)·조의(早衣)·선인(先人)등 중앙관직계층세력입니다.

    백제 초기 지배세력은 미추홀의 비류 세력 위례성의 온조 세력 또는 북부의 진씨 세력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배세력에 대한 신분제만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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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왕을 포함한 왕족, 준왕족, 5부족의 우두머리인 대가와 하위관료군, 호족등을 가리키는 좌식자 등이 지배계층이며 노예, 농노, 일반 백성 등이 피지배계층인 하호로 있었습니다.

    백제- 왕족과 더불어 해씨, 연씨, 협씨 등 8성씨의 왕비족이 왕족과 함께 지배계층의 최상부를 구성, 이들 왕비족은 왕비를 배출하면 해당 씨족이 관직을 독점했기 때문에 실제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졌으며 해씨, 진씨 등이 서로 비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암살을 통한 정권교체가 빈전, 대성팔족 중 어느 한 가문이 장기간 독재라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라- 골품제로 성골, 진골, 6두품부터 1두품까지 두품제로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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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신분제도 구조

    삼국시대의 신분은 왕족을 비롯하여 귀족, 평민, 천민으로 크게 구분된다.

    지배층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율령(법)을 만들어 신분적 차별이 심하였다.

    1. 귀족: 왕족과 중앙의 귀족들로 편성되어 권력을 독점하고 사회적, 경제적 특권을 누림

    2. 평민: 신분은 자유롭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귀족과 차별이 심함.

    3. 천민: 신분이 자유롭지 못하고, 국가와 귀족들에게 속함.

    -신분에 따른 생활모습-

    1. 귀족: 기와집, 창고, 마구간, 주방 등을 갖추고 높은 담을 쌓은 집에 살면서 비단옷을 입고 보석과 금,은으로 치장하였다. 토지, 철제 농기구, 소 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노비와 농민들에게 토지를 경작시키고 수확물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2. 평민: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거나 귀족의 토지를 빌려 경작하는 농민들이 대다수이지만,

    성이나 저수지를 쌓는일, 전쟁의 군사로 동원되기도 하여 생활이 어려웠다.

    3. 천민: 주인의 집에서 시중을 들며 생활하거나 주인과 떨어져 살며 주인의 땅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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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신분제도는 통일신라를 제외하고 신분제가 드러난 뚜렷한 역사적 사료가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귀족-평민-천민으로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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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에도 신분제는 존재했습니다.

    왕족, 귀족, 평민, 노비 등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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