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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4

여러 문화에서 대홍수에 대한 기록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세계 문화에 대홍수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은데요.

노아 홍수나 그리스로마신화 에도 홍수가 등장하잖아요.

동양에도 그런 홍수에 관한 기록이 있나요?

있다면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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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8.24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홍수신화가 있습니다.



    중국의 스촨(四川) 지역에는 다음과 같은 홍수신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태고에 두 형제가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있었다. 동생인 뇌공(雷公)은하늘을, 형인 고비(高比)는 땅을 맡았다.
    어느 날 뇌공이 사람이 제물을 잘못 바친 것에 화를 내 가뭄이 들게 하여, 지상의 모든 것이 말라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고비가 하늘의비를 훔쳐다가 사람들을 구하였다. 이에 노한 뇌공과 고비 사이에 싸움이벌어졌는데, 고비가 뇌공을 이겨 조롱 속에 그를 가두었다.
    고비에게는 복희와 여와라는 아들 딸 남매가 있었다. 고비는 집을 나서면서 절대로 조롱 속의 뇌공에게 물을 주지 말 것을 남매에게 당부하였다.
    그러나 남매는 뇌공의 애원에 못이겨 물을 주게 되고, 뇌공은 힘을 얻어조롱을 부수고 나왔다.
    뇌공은 답례로 남매에게 이(齒)를 한 개 뽑아주고 하늘로 올라갔다. 뇌공은 우신(雨神)에게 명령하여 밤낮없이 비를 내리게 했다. 홍수가 나서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고, 산꼭대기까지 물에 잠겼다.
    이때 남매는 뇌공이 주었던 이를 심었더니 순식간에 등나무로 자라서 박을 열매로 맺었다. 홍수가 밀려왔을 때 남매는 박을 파서 그 속으로 들어갔다. 남매는 박을 타고 홍수 속을 둥둥 떠다녔다.
    홍수가 물러간 후 보니 아버지 고비와 모든 사람들은 죽었고, 살아남은사람은 남매밖에 없었다. 이때 천상의 태백금성(太白金星)이 남매끼리 결혼하여 인류의 대를 잇기를 권하였다.
    남매는 거부하다가 산에 올라가 각기 다른 곳에서 연기를 피워올려 두 연기가 합쳐지면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두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자, 남매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결혼하여 인류를 번성시켰다.

    참고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의 홍수설화는 목도령 설화가 있습니다.

    선녀가 어느날 지상에 내려와 쉬다가 계수나무 정령에 반해 아름다운 동자를 낳았고 동자의 이름이 목도령입니다.

    아이가 일곱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자 폭풍우와 함께 몇달 동안 비가 내리고 계수나무는 목도령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곧 폭풍우때문에 무너지게 된다. 너는 내 등에 타야 살수있다. ' 라고 합니다.

    쓰러진 계수나무 위에 올라탄 목도령은 물결을 따라 흘러가고 어느덧 비는 그치고 목도령은 백두산에서 신선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의 신화에도 대홍수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 인도 신화에는

    마누가 물고기로 변한 비슈누 신 덕분에 홍수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연이

    전해옵니다 . 다만 그 재난이 인간의

    악행 때문이었던 것으로 명시되지는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축년 대홍수(乙丑年 大洪水)는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25년 여름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홍수를 말합니다. 한반도 전역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강과 낙동강 일대가 특히나 막심한 타격을 입었으며 홍수가 한 해에 모두 4차례나 닥쳐 논 3만 2천여 단보, 밭 6만 7천여 단보, 가옥 6천여 호가 유실되었습니다. 그 외에 붕괴된 가옥은 1만 7천여 호, 침수된 가록은 4만 6천여 호에 사망자가 647명이나 발생하여 피해액만 1억 300만 원에 이르렀고 이 액수는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60%에 맞먹었으니, 을축년 대홍수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