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유교를 국치로 삼은 조선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고 고려 초기 왕실에선 흔하게 벌어지긴 했습니다.
이는 고려왕조가 근친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때문이었습니다.
고려 왕조는 태조 왕건이 민족 내전을 최소화하기위해 혼인을 통한 호족들간의 동맹과 협력으로 탄생한 나라입니다.
태조 왕건에게는 29명의 부인이 있었기에 그가 죽고나자 초기에는 각 외척들이 결부된 왕권 다툼또한 치열했습니다.
때문에 고려 왕실은 근친혼을 통해 점차 외척의 입김을 줄여나가고자 했습니다.
이런 근친혼을 통한 권력의 보전은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조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