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령왕릉은 육조 시대에 발전한 도교의 영향을 받아 건축되었습니다. 도교 사상은 본래 내세보다는 현생의 삶 자체에 기본적인 전제를 두고 욕구 추구를 근본적 목적으로 삼는 특징이 있습니다. 도교가 발전함에 따라 현세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사후에도 그 믿음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게 되었으며, 이는 무령왕릉의 매지권에도 충분히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도교에 대한 이해는 무령왕릉이 축조되는 시기를 즈음하여 더욱 빠르게 파급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백제와 교류가 빈번했던 남조에서는 도홍경이 상청파의 교리를 완성하였습니다. 백제에는 이러한 남조의 도교가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 대향로와 같은 도교적 성격을 가진 유물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 중에서도 이러한 도교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왕비의 매지권에는 “토왕, 토백, 토부모, 상하 2000석 이상의 여러 관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지하를 지배하는 신으로 당나라의 두광정이 편찬한 도교 경전인 옥추경에 나오는 지신들의 명칭인 토황⋅토후⋅토백⋅토공⋅토모⋅토자⋅토손 등과 유사한 측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이들 지신의 이름이 도교로부터 유래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지권의 내용에 따르면 무령왕은 이들 지신으로부터 묘지를 매입한 것이 되며, 중국의 매지권에서도 토지신과 권속이 묘지 매매의 주체로 많이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