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무령왕릉의 발굴은 몇가지 측면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백제의 왕릉은 대부분이 도굴된 상태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무령 왕릉을 통래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고대 시기의 고분은 대부분 왕릉의 주인공과 조성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무령 왕릉은 묘지석을 통해 사서와 비교하여 정확히 주인공과 사망시기, 축조 시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묘지석의 기록에 따르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나이가 62세인 계묘년 병술일이 초하루인 5월 7일 임진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 계유일이 초하루인 8월12일 갑신일에 등관에 있는 대묘에 안장하였다.'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