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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곤잘
라울곤잘23.12.08

도산서원은 어떠한 이유때문에 유네스코에 등재 되었나요?

도산서원은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는데요.

도산서원은 어떠한 이유때문에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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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0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산서원의 유네스코 등재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청유산은 조선시대 교육 및 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입니다. 이 유산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 사이에 건립되었으며, 교육을 기초로 형성된 독특한 역사 전통과 성리학의 가치를 나타냅니다. 향촌 지식인들은 이 유산을 통해 성리학 교육을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한 교육 체계와 건축물을 창조하였으며, 전국에 걸쳐 성리학이 전파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완전성, 진정성이 등재 이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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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교육 및 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증거로, 이 유산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 사이 건립, 교육을 기초로 형성된 독특한 역사 전통과 성리학의 가치를 나타내며, 향촌 지식인들은 이 유산을 통해 성리학 교육을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한 교육체계와 건축물을 창조, 전국에 걸쳐 성리학이 전파되는데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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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은 이언적을 주향한 경주시 옥산서원과 함께 영남 남인의 양대 서원입니다.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랜드마크입니다. 1969년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 서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간 퇴계 이황이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지은 도산서당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의 사후인 1574년(선조 7년) 제자들과 유림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당 뒤편에 사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사후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국의 서원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어서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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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서원’을 평가하면서 꼽은 등재기준, 즉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는 크게 두가지다. 대상 유산인 9곳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세운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학교이다. 등재 기준 중 첫번째로 꼽히는 ‘OUV’는 대상 서원들이 성리학 가치에 부합되는 지식인을 양성했고, 지역의 대표 성리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제사를 지냄)했으며,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공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와 관련, “성리학자들은 서원에서 강학을 통해 성리학적 가치관으로 세계를 이해했고, 정기적인 제향으로 학파의 결집을 도모했으며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활동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두번째 ‘OUV’는 신청유산이 한국 서원 건축 유형의 탁월한 사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16세기 서원들이 처음 생길 때부터 정형화한 건축유형은 후대의 서원 건축에 모델이 되었다. 즉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이 안향의 옛 집터에 건립됐듯 서원은 제향인물의 연고지역에 자리잡았고, 성리학자의 전인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선택했다.

    여기에 제향과 강학, 휴식 공간으로 나뉜다. 제향공간은 사당을 중심으로 하며, 선현들을 위한 제사가 베풀어진다. 강학공간은 학습의 전당인 강당과 동·서재(기숙사)를 포함한 구역이다. 휴식 공간은 잠시 책상을 떠나 머리를 식히고 심신을 고요히 유지하는 수신의 영역이다.

    각 공간은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뚜렷한 건축전형을 완성했다. 입지를 고를 때부터 무척 신경썼다. 도산·병산·옥산서원 등의 경우 앞쪽에 맑고 깨끗한 계류와 긴 여울이 감싸고,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언제라도 누각에 오르거나 창문만 열어도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원의 입지 선정에 심신 수양의 환경을 첫손으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각 서원의 기본골격은 비슷했다. 사당과 강당, 동·소재와 내·외삼문, 전사청(제수를 준비하던 곳), 장서각(도서관)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됐다. 강당이나 누각, 정자, 연못, 계류의 이름도 반드시 지었다. 그러나 허투루 짓지 않았다. 강당의 경우 성(誠), 중(中), 경(敬), 의(義), 인(仁), 예(禮), 덕(德), 도(道), 교(敎) 등 성리학의 핵심개념을 표방했고, 누각이나 정자는 연(蓮)이나 매(梅) 등 옛 성현이 사랑한 꽃이름이나 풍(風), 월(月), 산(山), 수(水)자 등이 포함된 이름이 많았다. 이것은 서원이 학문과 덕성의 터전인 동시에 본성을 보존하고 정서를 함양하는 장수(藏修)의 공간임을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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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산서원과 같은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전통이 깊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이황 등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이었기에 등재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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