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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정권장악은 어떻게 이루어진건지?

안녕하세요? 고려 무인시대 정권 마지막 즈음 김준이 최씨도 아닌데 정권을 잡게 되는데요 어떻게 해서 김준은 정권을 잡게 된건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였고, 협기가 있어 최우(崔瑀)에게 발탁되어 전전승지(殿前承旨)가 되었다. 또한 최항(崔沆)이 정권을 세습하는 데 공이 있어 별장이 되었다.


      그러나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崔竩)가 최양백(崔良伯)·유능(柳能) 등을 신임하고 자기를 멀리하는 데 불만을 품고, 1258년(고종 45) 유경(柳璥)·박송비(朴松庇) 등과 모의, 최의를 죽이고 왕정복고를 꾀하였다.


      이로 인해 장군에 오르고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실권이 유경에게 돌아가자 동생 김충(金冲)과 함께 고종에게 참소해 유경의 승선직을 파면하게 하고, 그의 일당인 우득규(禹得圭)·김득룡(金得龍) 등을 참살하고 경원록(慶元錄)은 유배보냈다.


      대권을 잡은 뒤 1259년 원종이 즉위하자, 위사공신의 차례를 고쳐 자신을 제1로 하고 추밀원부사 어사대부 주국 태자빈객 익양군 개국백(樞密院副使御史大夫柱國太子賓客翼陽郡開國伯)에 봉하도록 하였다. 1263년(원종 4)에는 수태위 참지정사 판어사대사 태자소사(守太尉參知政事判御史臺事太子少師)의 직위에 올랐다.


      1264년(원종 5) 8월 원종이 몽골로 가기 전에 교정별감(敎定別監)에 임명되어 관리의 비위를 규찰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뒤이어 감국(監國)의 임무를 담당, 왕의 부재시에 국정을 보살필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였다.


      원종이 귀국한 후에도 최우의 구례에 따라 시중에 임명되고 해양후(海陽侯)에 책봉되었다. 이리하여 권력의 절정에 오르자 김준의 일족이나 자식들도 탐학을 일삼아 물의를 빚었고 백성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궁실에 바치는 내선(內膳)까지도 탈취하였다.


      1268년(원종 9) 몽골에서 사신을 보내어 징병에 관한 조서를 전하는 동시에 그의 부자 및 아우를 모두 연경(燕京)으로 입조하도록 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두려움을 느껴 장군 차송우(車松佑)와 의논, 몽골 사신을 죽이고 원종의 제거를 꾀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우 김충의 반대로 그 계획이 실현되지 못하였다. 왕권강화를 위해 몽골과의 강화를 도모하던 원종은 몽골 사신을 반대하는 김준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강윤소(康允紹)·임연(林衍) 등을 시켜 참살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