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 호족들은 언제쯤 중앙귀족으로 편입되었나요?
후삼국시대에 전국 각지에서 힘을 키운 호족세력은 고려건국초기에도 왕권에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이들은 언제쯤 독자성을 상실하고 중앙귀족으로 편입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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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지방 세력을 말한다. 신라의 수도가 남동쪽에 치우친 까닭에 지방 통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점차 신라가 쇠약해지면서부터 지방 세력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들을 보통 호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많은 재산 · 토지 · 노비 등을 거느리고 성주 · 장군 등으로 칭해졌으며, 이 중 일부는 군대를 소유했다. 고려 태조 왕건도 이러한 호족 출신이었으며, 그가 건국한 고려는 호족 연합의 성격이 강했다.
태조는 결혼 정책 · 사성 정책(호족에게 자신의 성인 왕씨를 주는 정책) · 기인제(호족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도록 함) · 사심관제(자신의 출신 지역을 다스리게 함) 등을 실시해 이들과의 세력 균형을 추구했다. 그러나 고려의 중앙 집권이 안정되면서 점차 호족 세력은 약해졌다. 특히 광종은 많은 호족 세력을 제거했다.
출처 :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사 용어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초 왕건 때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 하던 호족들은 고려 시대의 왕권 강화 정책을 편 고려 광종(925-975, 재위 949-975) 때부터 약화되어 갔으며 고려 경종 친정 후에는 문벌귀족 에 흡수되거나 일부는 주도권을 빼앗기고 몰락하여 향리 계층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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