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는 대부분 궁예를 축출한 왕건 세력에 의해 편찬된 텍스트를 저본 자료로 삼은 것이며, 왕조 시대의 전형적인 흥망사관에 입각해 왕건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그 쿠데타로 인해 추방된 궁예가 얼마나 잔인하고 난폭하였으며 의심을 많이 품었고 폭정을 일삼았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면이 크나 고려사 홍유 열전과 고려사 세가 934년의 왕건의 조서 기록들에 따르면 말년에 가서야 폭군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기록들도 있어서 그가 황제가 된 이후 시종일관 잔인하고 난폭하고 의심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부정하는 이야기들도 있으므로 실제로는 재위 말년에 가서야 궁예가 비로서 폭군이 되었다는 것에 힌트를 주는 면도 있습니다. 궁예가 폭군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왕조 측의 조작들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가 전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에서 너무나 무리하고 과격한 수들을 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예가 폭군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왕조 측의 조작들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가 전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에서 너무나 무리하고 과격한 수들을 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