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혁명가적 이상주의자'이지만 '폭군으로 몰락한 인물'의 상징입니다. 그는 비록 왕위 쟁탈전에서 제거된 인물이지만 능력을 바탕으로 후고구려를 건국하였습니다. 하지만 골품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능력주의로 인재를 선발하였습니다. 스스로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후삼국 시대의 통일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말년 궁예는 스스로 미륵 신앙에 빠져 광기로 신하와 가족을 학살했습니다. 호족을 통합하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해 왕건 등 측근의 쿠데타로 몰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