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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4.02.07

조선시대엔 금주령이 있었다는데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나요?

조선시대 전반적으로 술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건국 초기부터 금주령을 실시했었다고 하던데, 왜 지켜지지 않고 왕부터 백성 천민까지 술을 쉽게 마실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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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흉작이 들어 기근이 발생하면 종종 술 마시는 것을 금하는 법령인 금주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기간에 근신 절제함으로써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로하며 식량과 비용을 절약할 목적입니다. 1392년 조선개국 직후 흉작으로 인하여 금주령을 내린 것을 비롯하여 여러 대에 걸쳐 빈번하게 시행되었습니다. 특히, 태종 때는 거의 매년 내려졌고, 성종과 연산군 때도 자주 시행되었어요.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가간에 음주나 양조가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국가의 제향, 사신접대, 상왕(上王)에 대한 공상(貢上), 그리고 백성들의 혼인·제사 및 노병자의 약용으로 쓰이는 경우입니다. 또, 술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빈민들의 양조행위도 묵인되었습니다.

    또한 금주령은 지방에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준행되었으나, 서울의 사대부·관료사회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단속도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다만, 공·사의 연회가 금지되고 과도한 음주·주정 등의 행위가 제재되는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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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주령에 관한 법령은 주로 가뭄이 심한 봄·여름에 반포되어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해제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때로는 10∼12월에도 시행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보통은 중앙정부에서 결정되어 발표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방 관찰사들의 건의로 시행되기도 하였는데 이 법령이 반포된 기간에도 음주나 양조가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국가의 제향, 사신접대, 상왕(上王)에 대한 공상(貢上), 그리고 백성들의 혼인·제사 및 노병자의 약용으로 쓰이는 경우였다. 또, 술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빈민들의 양조행위도 묵인되었다고 합니다. 금주령은 지방에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준행되었으나, 서울의 사대부·관료사회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단속도 사실상 어려웠는데 다만, 공·사의 연회가 금지되고 과도한 음주·주정 등의 행위가 제재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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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금주령은 큰 가뭄이 들거나 흉작·기근이 있을 경우 국가에서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식량과 비용을 절약할 목적도 있지만, 이러한 시기에 근신 절제함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또한 굶주린 백성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금주령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나라는 제사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려면 반드시 술이 필요했고 제사를 지내고 난후 반주는 보통 용납해주는 문화 때문에 법대로 지켜지지 않았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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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에녹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금주령은 주로 흉년이 들었을때 내려졌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곡식으로 술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용납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금주령은 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깨졌는데 개인적인 일탈로도 볼 수 있지만 주로 금주령 하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술의 가격으로 인해 권력자들과 상인 등이 밀주를 만들어 유통시킨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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