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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7.16

임꺽정이 도적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적 임꺽정은 백정출신이었다고 하는데요.

백정에서 어쩌다가 도적이 되어버린 건가요?

임꺽정이 도적이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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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명확한 계기나 시기는 알기 힘들지만 아마도 백정으로서 겪어야 할 신분적 차별과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활동하던 무대가 되었던 명종 대에는 명종의 나이가 아직 어린 탓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그 동생인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고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아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웠으며 관리들이 부패하여 민생이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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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이유는 당시의 나라상황이 혼란스러운 탓도 있지만, 백정이라는 신분에 의한 것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더 크다고 보여집니다.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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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의 난은 역대 반란 가운데서도 상당히 장기적으로 지속되었고 조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영의정 상진, 좌의정 안현, 우의정 이준경, 중추부 영사 윤원형등 당대 최고의 실권자가 모여서 황해도를 휩쓰는 도적떼를 없앨 대책을 세운 것이 1559년(명종 14년) 3월 27일이었다.


    이후 관군에 의해 소탕된 것이 1562년(명종 17년) 1월 초였으니 무려 3년이 넘게 관군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황해도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3년 이상 지속된 것에는 여러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임꺽정의 난에 대해 [명종실록] 편찬자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여 정치만 잘했다면 임꺽정의 난이 일어날 리 없다는 말이다. 임꺽정을 흉악범으로 기록해 놓은 [명종실록]이지만, 사관(史官)은 그 본질을 읽고 있었다. 임꺽정의 난이 일어날 무렵 조선사회는 동맥경화의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른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기였고 이 때의 왕이 명종(明宗)이었다.


    실제 명종대의 진정한 대도는 임꺽정이 아니라 실권자였던 문정왕후의 혈육 윤원형(尹元衡)이었다.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자 문정왕후의 동기간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었다. 임꺽정은 우연하게 출연한 도적이 아닌 것이다.


    사실, 임꺽정이 활약했던 황해도 지역의 지방 관리들은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친정붙이들이었다. 임꺽정 난이 기록상 보이기 시작하는 1559년 황해도 지역은 극심한 흉년과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할 지경이었다. 가난과 전염병으로 쪼들린 농민들은 살 곳을 잃고 떠돌아 다니다가 도적이 되는 것이 기본 수순이었다.

    당시 왕이었던 명종은 이들을 ‘반적(叛敵)’이라 부르며 반란군으로 규정했다. 단순한 도적이 아닌 체제도 뒤엎을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왕의 특명에도 불구하고 임꺽정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신출귀몰한 임꺽정이 잡히지 않자 그에 대한 현상금은 높아만 갔다.


    [명종실록]에 실려 있는 임꺽정 기사는 상당부분 가짜 임꺽정을 진짜로 둔갑시켜 출세를 해보려는 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1561년 1월 3일에 황해도 순경사 이사증, 강원도 순경사 김세한이 임꺽정을 잡았다고 보고했으나, 그들이 잡은 인물은 형인 가도치였다.


    이들은 임꺽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세에 눈이 멀어 가도치를 때려 죽이면서까지 진실을 덮으려 했지만, 발각되어 중형을 받았다.


    이사증의 뒤를 이은 인물이 의주 목사 이수철이다. 이수철은 임꺽정과 한온을 붙잡았다고 조정에 보고했으나 그가 잡은 인물은 윤희정과 윤세공이라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임꺽정 무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나 고문에 못 이겨 죄를 거짓 자백한 후 사형을 당했다.

    당시 의주 목사 이수철도 이들이 임꺽정과 한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온갖 고문을 동원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었고, 늙은 노파를 잡아다가 임꺽정의 아내라 하며 인두질을 해댔다. 사실이 드러난 이후 이수철은 파직처리 당했지만, 이들 외에도 임꺽정을 잡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 관리들은 넘쳐났다

    출처 : 인물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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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시기나 계기는 알기 힘들지만 백정으로서 겪어야 할 신분적 차별과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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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이유는 탐관 오리들의 가혹한 횡포 때문 이었다고 하지만 명확한 계기나 시기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백정으로 겪어야 할 신분적 차별과 당시 혼란 스러웠던 정치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을 할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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