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하면 규장각을 떠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규장각은 정조대왕 이전부터 조선시대의 도서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규장각이 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규장각은 정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서 만든
국립도서관이자 정책 연구기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정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규장각을 통해 많은 인재들이 등용되었고 규장각의 관원들은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정조를 도왔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규장각 - 정조가 만든 국립 도서관이자 정책 연구 기관 (한국사 사전 1 - 유물과 유적·법과 제도,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규장각은 조선시대의 고증을 위해 필요한 문서와 서적을 수집, 보관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했던 도서관입니다. 이 도서관이 왕실 도서관으로서 정조대왕 때 규모와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정조대왕과 규장각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문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조선시대 문화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도서관을 중요한 문화정책 수단으로 여겨서, 도서관 확장과 도서 구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규장각은 정조대왕의 시대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확장하고, 보존할 문서와 서적을 구입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습니다. 또한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국왕의 개인 서재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규장각의 직원들을 왕실 관료로 임명하는 등 규장각의 지위를 높였습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규장각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도서관으로 자리 잡았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중요한 문서와 서적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문화정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규장각이 조선시대의 중요한 도서관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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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는 할아버지에 이어 탕평정치를 하는데 사람을 쓰고 내침에 있어 당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의 편인 신하들을 키우기 위해 만든것이 규장각입니다.
규장각은 겉으로보기에는 왕실도서관이나, 이는 위장일뿐이니 이유는 대놓고 왕이 자기 편을 만들겠다고 하면 반발이 일어나니 규장각을 세우고 그곳에서 인재를 키운겁니다.
규장각과 연계해서 실시한 제도가 초계문신제도이며 37세 미만의 신진관료 중 우수한 사람을 신분에 상관없이 발탁하여 규장각에서 재교육을 시킨 제도로 여기에 정약용, 유득공 같은 인재가 발탁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는 조선 임금 중 천재적인 학술능력을 보유한 독보적 왕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보며 일찍부터 학습하고 노력한 결과일 것입니다. 대체로 학문을 논하면 대신들의 능력이 큰 법인데 정조는 대신들의 그것을 능가하였습니다.
정조는 영조의 뒤를 이어 탕평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새인물들을 등용하기 위해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인물들을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해 활동케하였습니다. 규장각은 왕립도서관이지만 도서관 이상의 학술연구기관이며 더 나아가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는 기구였던 것입니다. 이덕무나 정약용이 규장각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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