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설치한 규장각은 무엇인가요?
조선 후기 영조의 뒤를 이어 사도세자의 죽음을 뒤로하고 보위에 오른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 했는데요, 물론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했을 것이라 예상이 되는데,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규장각은 조선의 왕실 도서관 입니다.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에서 출발했지만 정조는 이곳을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화시켜 역대의 도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 연구의 중심기관이자 정조의 개혁정치를 뒷받침하는 핵심정치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게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 서화, 유교(遺敎) 등을 관리 및 보관하던 곳이다. 최초로 이를 구상했던 사람은 7대
왕인 세조로, 1464년에 양성지의
건의로 처음 설치하였으나 세조가 사망한 후 곧 폐지하였고, 훗날 정조 때 다시 부활하였다. 세조 때는 어제존각지소(御製尊閣之所)라고도 불렸으며, 세조 사후 폐지되어 건물이 황폐화되자 1694년(숙종 20년)에 세조가 친히 쓴 ‘규장각(奎章閣)’이라는 액자를 종정시(宗正寺)의
환장각(煥章閣)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세조 때 규장각을 설치한 후 한국사 최초의 왕조 시문집인 열성어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내각일력에는
규장각의 업무나 문화 사업에 관련된
일을 모두 실려있다.
-출처: 나무위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규장각은 그 이름대로 역대 왕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의 역할을 하였다.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의 기능과 문한(文翰)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까지 부여하였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의 문물을 불러일으킨 중심 기관으로 많은 책을 편찬했으며, 여기에는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학자들도 채용 되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