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퀘백은 프랑스, 영국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캐나다의 퀘백 지역은 정치적인 독립 주민 투표를 할 정도로 특이한 지역이라고 하던데요.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도 연관이 있다던데,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인트로렌스강 어귀에 내만(內灣)이 갑자기 좁아진 지점에 발달한 항구도시이다. 지명은 인디언어로 해협(海峽) 또는 갑자기 좁아진 지점을 뜻한 것에서 유래되며, 인디언 시대에는 스태더코나라고 불렀다.
이곳을 최초로 찾아든 백인은 1535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였으나, 1608년 샹플랭이 처음으로 취락을 창설했다. 그 후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 간에 여러 번 쟁탈이 계속되었다가 1763년의 파리조약 이래 정식으로 영국령(領)이 되었고, 1841∼67년까지 캐나다 식민지의 주도가 되었다.
시가는 상·하 2구로 나누며 상구(上區)는 해발고도 100m의 대지(臺地)에 있는데, 북아메리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벽도시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관공서 등의 공공시설이 많으며, 공원·주택지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대지 변두리에서 세인트로렌스강을 바라보는 지점에는 유명한 프론트넉성(城)이 솟아 있어 한층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하구(下區)는 주로 항구와 상업지구를 이루고 있으나, 교회를 비롯한 건물과 일상생활 풍습 등, 옛 프랑스 양식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퀘벡에는 프랑스계의 주민이 많으며, 언어도 프랑스어가 상용어로 쓰이고 있다. 신문용지의 제조를 비롯하여 금속·조선·펄프·피혁·식품가공·섬유 등의 공업이 성하며, 곡물·석유의 거래도 활발하다. 그러나 공업·무역면에서는 새로 발전한 몬트리올을 따르지 못한다.
시에는 1823년 이래의 성채를 비롯하여 17세기 이래의 건축물이 많아 캐나다 최대의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1852년에 설립된 캐나다 최고(最古)의 라발대학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퀘벡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퀘벡은 캐나다의 동부에 위치한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주입니다. 이 지역은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적 경쟁으로 인해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퀘벡은 17세기에 프랑스가 신세계에 식민지를 세우면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지역입니다. 프랑스는 여기서 물가와 털을 거래하며 초기 캐나다 식민지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7년 전쟁(1756-1763)으로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습니다. 이로 인해 퀘벡 지역의 식민주민들은 영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는 등 자신들만의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캐나다 통치는 1867년 캐나다 연방이 형성되면서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퀘벡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욕구가 강하였고, 이는 20세기 후반에 퀘벡주 독립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1980년과 1995년에 퀘벡에서는 독립을 결정할 투표를 실시했지만, 두 번 모두 독립은 부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벡은 캐나다 내에서 자기 주권을 강하게 주장하며, 퀘벡주 정부는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보호하고 강조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퀘벡은 캐나다 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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