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신은 조선 후기 궁내부·의정부·군국기무처 및 8아문과 7부의 장관에 대한 호칭을 말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주조선일본군사령관인 하세가와를 대동하고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어전회의에 참석한 각료들을 강압적으로 압박하여 조약에 찬성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고종은 건강상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대신들이 찬성을 하였습니다. 참정대신 한규설은 반대하고 임금께 고하러 가다가 졸도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총 9명의 대신 가운데, 5명의 대신은 약간의 내용 수정을 한 다음에 최종 찬성하고 서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으로서, 조국을 왜적에게 팔아먹은 매국노라하여 역사상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이라 칭합니다.
을사늑약은 외교권 포기, 통감부설치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대외적 주권을 행사할 수 없고 대내적으로 감독기구인 통감부가 설치되어 주권국가의 본질을 기본적으로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국가의 주권을 상실하는 의미를 갖는 조약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