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사에서 종요는 어떤 위치의 인물인가요?
삼국지 시대의 종요라는 인물이 서예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왜 중요한 사람인가요?
조선의 한석봉처럼 글을 잘쓰기로 유명했던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삼국위(三國魏)의 서예가. 자는 원상(元常). 영천장사(頴川長社, 허난성) 사람. 처음에 후한에서 벼슬을 하다가, 조조(曹操, 위무제)와 친하여 위의 상국(相國)에 임명되었다. 명제(明帝, 재위 226~239) 때에 정릉후(定陵候)에 봉해졌고, 태부(太傳)로 승진했기 때문에 종태부라 불리웠다. 글씨는 유덕승(劉德昇)에게 배웠고, 팔분(八分) ∙ 해서 ∙ 행서를 잘했으나 후세에는 오로지 해서의 명수로 알려졌다. 『공경상존호주(公卿上尊號奏)』, 『수선표(受禪表)』는 서명은 없으나 그의 글씨라 전해진다. 『진상재첩(眞賞齋帖)』의 「천관내후계직표(薦關內侯季直表)」, 『울강재묵묘(鬰岡齋墨妙)』의 「하첩표(賀imagefont表)」, 『쾌설당법서(快雪堂法書)』의 「묘전병사첩(墓田丙舍帖)」 등이 있으나 그의 작품인지는 의심스럽다.
출처 : 미술대사전(인명편)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예사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으로, 지금 우리가 정자체로 알고 있는 해서체(楷書體)를 확립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선시표(宣示表)가 해서체의 정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글씨를 보면 지금의 해서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표문은 황실 창고에 보관되어 오다, 8왕의 난 때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이후 동진이 건국되면서 보관하고 있던 관리가 진상하면서 행방이 밝혀졌습니다. 해서첩 중에 가장 오래된 본으로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복각한 부본들만 남아있지만 송나라 왕희지는 당대에 실물을 보고 해행(楷行)을 비롯한 자신의 자체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 집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요는 예서에서 해서로 서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해서의 기본 법칙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서예사적 공헌이 있는 인물입니다. 해서체는 정자체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예사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으로 지금 우리가 정자체로 알고있는 해서체를 확립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선시표가 해서체의 정본으로 알려져있는데 글씨를 보면 지금의 해서체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 표문은 황실 창고에 보관되어 오다 8관왕의 난 때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이후 동진이 건국되면서 보관하고 있던 관리가 진상하며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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