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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5.05

한고조 시절에 흉노의 세력은 어느정도였나요?

항우를 물리친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흉노를 치려다가 오히려 당해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빠져나온 것으로 들었는데 그 당시에 흉노의 세력은 어느정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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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5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흉노(匈奴)는 상고시대로부터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했던 유목민 집단 및 이들이 세운 국가의 이름이다.


    세계 최초의 유목 제국이다.[8] 이 시절 끊임없이 중화권 국가와 치고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첫 등장은 기원전 4세기 말 전국시대부터이고, 이후 한(漢)대에 이르러서는 북아시아 최강의 유목국가로 성장했다. 건조한 초원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 현재의 중국 북부, 몽골 고원에서부터 러시아 남쪽에까지 달하는 광활한 제국을 건설했고,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그리고 현재 중국의 내몽골, 간쑤성, 토하리스탄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출처:나무위키 흉노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신에게 모반의 징후가 있다하여 그를 초왕에서 회음후로 강등 시킨 것이 고조 6년 기원전 201년의 일이고 고조 7년 기원전 200년에 흉노가 한왕 신을 마읍에서 공격하자 한왕 신은 결국 흉노와 내통하여 모반을 하게 됩니다.

    이에 고조가 직접 토벌군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게 됩니다.

    이 당시 한신은 이미 고조의 눈 밖에 나 회음후로 강등된 상태였으므로 고조가 그에게 군권을 맡겨 흉노 토벌에 등용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장량은 흉노 토벌군에 동행했을 가능성이 있긴하지만 정확하진 않군요.

    여하튼 항우가 지휘를 하든 유방이 지휘를 하든 당시 중국은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기에 흉노와 결전을 벌인다고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강노지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멀리 원정을 떠난 원정군이 전투에 불리한 것은 언제나 당연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209년 묵돌 선우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선우위에 올랐다. 묵돌은 동몽골을 공격해 동호를 멸망시켰고, 서쪽으로 알타이-준가르분지-서고비-하사주랑의 광활한 월지를 공격해 대부분의 강역을 점유했다. 흉노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여러 부족들도 흉노에 복속되었다.

    한편 중원에서는 유방이 초한전쟁을 수습하고 전한을 세웠다. 기원전 200년 흉노가 한나라의 변경을 공격하자, 유방이 친정하여 흉노군과 맞서 싸웠으나 백등산 포위전에서 처참하게 당하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기원전 177년 흉노의 우현왕이 한나라의 변경을 약탈했다. 이에 한 문제가 우현왕을 치게 했으나 당시 실크로드 정책에 집중하고 있었던 목돌 선우는 흉노의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이후 우현왕은 하서를 공격해 월지족을 천산산맥 넘어로 축출하고 서역의 26개국을 복속시켰다. 이로 인해 실크로드는 흉노의 손에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