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이 스스로 삼전도비를 만들었나요?
조선은 스스로의 손으로 굴욕에 가까운 내용을 비석으로 만들어서 세웠는데 이처럼 굴욕스러운 상황을 적은 비석을 조선이 스스로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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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삼전도비가 세워졌습니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이 썼습니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만주글자, 오른쪽에는 몽골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2010년 3월에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에 위치하던 비석을 고증을 통해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 때 승리한 숭덕제가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 세워졌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가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을 하면서
부끄러운 강화협정을 맺게 되었는데,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민족의 수치심을 나타내는 삼전도비는 우리의 의지대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청나라의 태종의 요구에 의해서 만든 비석 입니다. 그래서 원래 명칭도 대청황제공덕비 였는데 그냥 삼전도비가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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