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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점
창백한 푸른점24.02.08

삼전도 굴욕이 정확하게 뭔가요?

조선시대에 있었던 삼전도 굴욕이 정확하게 어떤건가요? 삼전도 굴욕이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사건이길래 굴욕이란 말까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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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화도 조약까지 맺게 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이를 삼전도 굴욕이라고 합니다.

    청군이 길을 막아 강화도로 갈 수 없게 되었고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버티지 못하고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화도조약은 1876년(고종 13년) 2월 강화도에서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을 말합니다.
    일본의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으로 공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며,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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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은 병자호란(1636)을 일으켜 조선을 굴복시킵니다. 조선의 왕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아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3번 절하고, 9번 고개를 숙이는 '삼배구고두례'를 통해 청나라에 항복의 의식을 했습니다. 이를 삼전도 굴욕이라 합니다. 삼전도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본영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강 나루터이기 때문에 삼전도 굴욕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현재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 있으며, 서울과 부리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삼전도 굴욕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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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 있는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 입니다.

    살기위해서 입니다.

    송파구 삼전동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했습니다.

    남한산성의 서문으로 나와 과거엔 나루터였던 삼밭나루에 마련된 장소로 이동해 항복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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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의 급습으로 강화도로 미처 피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으나 40여일 만에 항전을 끝내고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인조는 삼전도로 나와 청의 숭덕제 앞에서 삼배고구두(세번 절하고 이마를 아홉번 땅에 처박음)의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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