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초로 행해진 것은 헤이안 시대이며, 정확하게 누가 처음으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설이 존재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후지와라노 야스스케가 구속되고 자해를 한 게 원조로 꼽힌다. 다만 그는 이러고도 안 죽었고, 다음날에 옥사하였다고 합니다.
할복의 성격이 명예와 결합된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센코쿠 시대의 무사인 시미즈 무네하루의 할복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시미즈가 속한 모리 일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의 침공을 받고 있었는데, 혼노지의 변이 발생하여 히데요시가 긴급히 군대를 회군하게 되어 동맹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데요시 측은 동맹의 조건으로 무네하루의 할복을 요구했고, 무네하루는 굳이 할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 더 이상 다른 요구를 묻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자신의 검으로 배를 갈랐습니다. 이에 한시라도 빨리 군대를 회군해야 되는 히데요시조차도 무네하루의 할복을 "진정한 무사의 죽음"이라 하며, 그의 할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훗날 일본을 석권한 다음 그 아들인 카게하루에게 "다이묘로 삼아줄 테니 나의 직신 이 되어라"라고 제안하였으나, 카게하루는 모리에 대한 의리로서 그것을 거절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일화는 무사도의 본질을 관통하는 일화로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책임을 지거나 명예를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할복이 정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