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라는 작곡가에 대해 알고싶어요
비제라는 프랑스 작곡가가 오폐라라는 음악을 만들었다는데 어떤한 인물이고 음악가에 얼마나 업적을세웠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죠르쥬 비제는 파리 근교에서 성악 교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에게서 음악 교육을 받은 그는, 1848년 10세 때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A.마르몽텔에게 피아노를, F.브누아에게 오르간과 푸가를 P.지메르만에게 작곡을 배우고, 때로는 구노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1853년 지메르만이 죽은 후에는 알레비를 사사하였는데, 그는 구노와 알레비에게서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56년 칸타타 다윗(David)을 로마대상 작곡 콩쿠르에 제출하여 입상하고, 1857년에는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로마대상을 받아, 관비로 3년 가까이 유학했다가 파리로 돌아와서는 그때부터 오페라 창작에만 주력하였다.
1863년 이국적인 선율의 3막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를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비제의 최초의 중요한 작품이다. 그리고 1869년 2월 로마 체재 중의 회상을 담은 모음곡 로마의 추억(나중에 교향곡 로마로 개작)이 파들루의 연주회에서 연주되고, 또 6월에는 은사인 알레비의 딸 주네비에브와 결혼하였다. 그 후 1872년 보드빌오페라극장의 지배인 L.카르발로의 권고로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극화한 《아를의 여인》의 부수음악 27곡을 써서 성공하고 그중 4곡을 스스로 선택한 모음곡은 파들루의 연주회에서 연주되어 청중을 매료하였다.
1875년 메리메의 소설에 의한 가극 <카르멘>을 완성하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는데 3개월 후에 <카르멘>의 세계적 대성공을 알지 못한 채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오페라는 그의 어떤 작품보다도 많이 연주된 것으로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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