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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은 풍수지리설에 내세워 서경 천도를 주장했으나 인종과 개경 귀족들의 반대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1135년 묘청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서경의 분사시랑 조광, 병부상서 유참 등과 함께 반기를 들고,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군대의 명칭을 천견충의군이라 하였습니다. 정부는 김부식을 평서원서로 임명하여 반란군 진압을 주도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들이 정부군에 호응, 협력하게 되면서 정부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반란군의 실권자인 조광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묘청의 목을 베어 분사대부경(分司大府卿) 윤첨 등에게 주어 개경으로 보냈으나, 개경 정부는 윤첨 등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조광 등은 항복해도 죄를 면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 끝까지 싸울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즉 정부에 협조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은 것을 예감하고 항복하지 않고 1136년까지 저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