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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1.08

마지막 황제였던 고종은 어떤 왕이었나요?

안녕하세요.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고종은 오늘날에도 저평가를 받고 있던데 그 시대에 고종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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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키가큰올빼미231
    키가큰올빼미23123.01.08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이 아무래도 일본 침략은 물론이고 여러가지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일본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게 되면서

    부터 저평가가 되는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가 고종에 대해서 생각하면 망국의 책임이 있는 왕이며, 아버지 및 부인에게 휘둘려 제대로 왕권을 가지지 못한 우유부단한 왕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고종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 왕"이라 평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왕들처럼 출판물이나 제도의 기틀을 잡지는 않았지만, 망해가는 왕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 및 현실은 조선을 망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형편이었고,

    고종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고종 초기의 일들은 대원군의 섭정에 따른 일이라 고종의 업적에서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종 초기의 업적이라 함은 아무래도 "세도정치의 타파"라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앞서 말했듯 대원군의 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망국으로 치닫는 조선을 대원군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1.서울 도심 정비


    -이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서울(당시의 종로)의 도로를 재정비하였고, 서울로 통하는 도로를 개통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광장"을 만들어 신민들이 집회 및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광장은 현재 서울광장의 위치이며, 탑골공원(구 파고다공원)도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2.황제즉위


    -허울뿐인 황제라 하지만, 고종의 입장에서는 조선독립을 위한 상징적 움직임이었습니다.

    타국에서는 고종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주독립을 기본으로 하는 황제국가를 선포한다는 것은

    고종의 강인한 독립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근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3.헤이그 특사 파견


    -을사늑약은 고종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었지요.

    하지만 고종은 이후, 3인의 특사를 헤이그 파견함으로써 조선의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 자신이 강제퇴위 당하는 일로 이어지게 됩니다.




    4.소학교령


    -고종의 업적중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고종은 소학교령을 공포하면서,현재 초등학교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보통 초등학교는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초등학교는 고종때 계획된 것으로

    신민의 교육에 힘썼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가장 지혜가 없는 아들로 흥선대원군이 수렴청정을 하기위해 세운 왕이며 명성황후의 의견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유약한 왕이었습니다 때문에 일본인들로부터 왕좌를 빼앗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