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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무
수리무24.04.13

포도청은 한양 치안만 담당하나요?

조선시대에는 포도청을 둬서 치안을 담당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포도청은 한양의 치안만 담당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방에도 포도청을 둬서 전국의 치안을 담담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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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도청은 조선 시대치안을 담당했던 기관입니다. 치안 담당 기관의 명칭이 포도청(도둑 잡는 관청)인 조선 시대와 경찰청(언제나 깨어 살피는 관청)인 현대의 관점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줄여서 포청이라고 합니다.

    포도대장은 종2품으로, 현재의 경찰청장에 해당합니다.

    한성부와 경기도를 좌우로 나누어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을 두었습니다.

    1481년(성종 12년)에 좌변·우변으로 나누어, 서울의 동부·남부·중부와 경기좌도는 좌변이 맡고, 서울의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는 우변이 맡았습니다. 1540년(중종 35년), 《중종실록》에 포도청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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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도청은 한성부와 경기도를 좌우로 나누어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을 두었습니다.

    포도청은 오늘날의 경찰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으며, 범죄자를 잡거나 다스리는 일을 맡아보는 관아입니다. 즉 서울과 경기도의 치안을 담당하였습니다. 당시 경찰과 군대가 구분되지 않아 병조 휘하의 무관 관부였습니다. 그리고 각 지방의 치안은 지방 수령이 자체적으로 맡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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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도청에는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이 있는데 좌포도청은 지금의 종로3가에, 우포도청은 지금의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있었답니다. 성종 때 임시로 만들어졌다가 중종36년(1541)에 정식 관아가 되었는데 포도청의 가장 높은 사람은 포도대장이었고 포도대장 아래에 포도군관, 포도부장, 포도군사들이 있었습니다. 포도청은 처음에는 서울과 경기도를 담당했는데
    좌포도청은 한성부의 동부ㆍ남부ㆍ중부와 경기도의 서쪽을, 우포도청은 한성부의 서부ㆍ북부와 경기도의 동쪽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도성 밖에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면서 포도청에서 하는 일이 늘어나자 서울만 안전하게 지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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