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님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나요?
김좌진 장군님하면 청산리 대첩이 떠오르는데요.
어릴때부터 집안의 노비문서를 태우고, 재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범인의 면모를 보여주셨는데요.
그런 장군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는 일본군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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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반공 노선으로 전향한 김좌진은 참변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만주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한족총연합회 주석 등에 임명되는 등 만주의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약했고 1925년 신민부, 1929년 한족총연합회 등을 창설하고 활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항렬이 같은 아우뻘인 김종진 등 아나키스트들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길림성 해림현 산시진 도남촌에서 1930년 1월 24일 41살의 젊은 나이에 암살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現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었으며, 김동삼, 오동진 등과 3대 맹장(猛將)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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