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반공 노선으로 전향한 김좌진은 참변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만주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한족총연합회 주석 등에 임명되는 등 만주의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약했고 1925년 신민부, 1929년 한족총연합회 등을 창설하고 활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배제하고 항렬이 같은 아우뻘인 김종진 등 아나키스트들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길림성 해림현 산시진 도남촌에서 1930년 1월 24일 41살의 젊은 나이에 암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