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군주의 도리를 하지 않고 한양 도성을 버리고 떠난 것이 가장 큰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실록에 따르면 당시 분노한 백성들은 경복궁과 창경궁 등에 불을 지르고 보관된 노비 문서를 태우는 등 크게 반발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중매체에서는 선조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미지가 많이 좋지 않은 편입니다.
1592년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고니시 유기나와 시마즈 요시모리 가토 기요마사 등 3갈레로 나누어 한양으로 진격하였습니다. 이에 선조는 당황하여 몽진을 떠나게 되면서 의주까지 가게 되었고 광해군을 세자로 삼아 분조를 운영하였습니다. 광해군은 분조를 담당하여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를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민심을 안정시킨 반면에 선도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고 심지어는 명나라로 망명할 생각까지 한데 대해서 백성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서에도 선조를 총명하고 지혜로움은 많으시나 덕을 쓰심이 넓지 못하고, 좋은 말 듣기를 매우 좋아하나 많은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순신의 충심을 끊임 없이 의심해서 전쟁 중에도 도성으로 불러 들여 고문 하고 곤장을 치고 백의 종군 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봐도 의심이 많고 본인의 왕좌에 두려움을 느낀 인물 이라고 보여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