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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7

조선시대의 단종은 영월의 유배지에서 어떤 생활을 하였나요?

그래도 엄연히 세조에 대해서 상왕의 입장인데 유배지라고 해서 너무 힘들게 생을 마감한 것인지 그래도 세조가 최소한의 예우는 해 드린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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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종이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서 생활한 것도 잠간이었습니다. 1457년 경북 '순흥부'에서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 운동을 한 것입니다.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며 문종의 동생입니다. 세종의 장남이 문종이며 둘째가 세조(수양대군)이었는데, 금성대군은 둘째 형의 반란에 반대하며 조카 단종의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금성대군이 세조의 사약을 받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정축지변'이라고 합니다.

    금성대군의 정축지변의 화가 결국은 단종 죽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이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가게 되었고, 이번에는 정축지변으로 제거될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세조는 단종에게도 사약을 내렸습니다. 김종서 등의 공신을 죽이고 사육신 등 충신을 죽인 후 금성대군 등 형제를 죽였습니다. 그런 세조가 이번에는 조카마저 죽이는 것입니다.

    <숙종실록>에 의하면 의금부의 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세조의 사약을 전하기 위해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마 사약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왕방연을 모시던 졸개가 단종을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야사에 의하면, 그 졸개는 '복득이'라는 인물이었고, 뒤에서 단종의 목을 활줄로 조아서 교살했다고 전해집니다. 단종이 죽음을 맞은 것은 겨우 열일곱 살 때의 일입니다.

    하지만 <세조실록>에서는 단종 죽음을 자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금성대군의 죽음을 전해들은 뒤, 슬픔을 못 이기고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숙종실록>에서는 직접적으로 타살 정황을 적고 있으니, 세조실록이 단종 죽음의 역사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거짓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숙종실록에 의한다면, 단종이 사약을 거부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키스세븐 지식 https://kiss7.tistory.com/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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