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갑오개혁의 배경은 국내적으로 1884년 갑신정변 등 개화파의 개화 의지가 반영된것이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 화약으로 농민들의 개혁 요구가 반영된 것입니다. 즉 당시 정부는 6월 11일 교정청을 만들어 동학도의 요구를 반영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에서 계속 주둔의 구실을 삼기 위해 6월 21일 경복궁을 점령하고,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개혁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교정청은 없어지고 군국기무처 중심으로 개화정책이 추진됩니다.
그러나 갑오개혁은 일본의 강요에 의해 추친되나 청일 전쟁으로 조선 관료들이 주체적으로 추진합니다.
즉, 갑오개혁(1894.6-1896.2)은 비록 일본의 강요도 있지만 개화 관료들의 개화 의지와 동학 농민의 주장을 수용하고, 조선 관료들이 추진한 자주적 개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