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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마수리346
요리조리마수리34623.09.04

조선시대 노비에도 종류가 나뉘었나요?

조선의 인구가 대략적으로 1000만명정도라고 추정을 하던데요. 노비의 전체 인구가 약400만명이라는 숫자로 추산을 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노비를 유지한것일까요? 단순히 하나의 노비라고 해서 노비들은 모두다 똑같은 대우, 똑같은 역할을 한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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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노비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크게 공노비와 사노비로 구분되며, 공노비에는 중앙의 각사에 소속된 각사노비, 내수사와 각 궁방에 소속된 내노비, 지방 군현이나 감영, 병영에 소속된 관노비, 역참에 소속된 역노비, 향교에 소속된 교노비가 있었습니다.

    사노비는 일반적으로 솔거노비와 외거노비로 구분되었고 솔거노비는 주인의 호적과 가호에 속한 채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 외거노비는 독자적인 호적과 가호를 유지하며 주인에게 주로 신공을 바친 노비 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 10% 안되던 보니가 조선시대에 40% 정도로 많아진 이유는 양반들이 노비들의 양천교혼을 유도한 것도 큰 이유인데 성리학의 대학자로 알려진 퇴계 이황이 아들에게 남긴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범금(范金)과 범운(范雲) 등을 불러다가 믿을만한 양인 중에 부모가 있는, 생업을 의탁할 수 있는 자를 골라 시집을 보내고, 죽동에 와서 살게 한다면 더욱 좋겠다.” (『도산전서(陶山全書)』 中)

    즉, 양인과 노비가 결혼해서 낳은 자식도 보니가 되다 보니 양반들은 노비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양인과 노비의 결혼을 추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비는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노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일부 왕들은 노비 숫자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펴기도 했는데 결국 왕은 노비를 줄이려고 하고 양반들은 노비를 늘리려고 하는 우스운 결과나 나오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노비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직접 소속 기관이나 주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입역 노비와

    노동력 제공 대신 매년 일정한 액수의 공물을 바치는 납공 노비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