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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5.21

히틀러가 유대인을 혐오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일 히틀러 나치 유대인 혐오와 차별은 지금도 유명한데요. 오케이 히틀러가 유대인을 싫어하게된 근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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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1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당시 반유대주의 진영의 힘을 앞세워 유대인 학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내용의 시온장로회 수칙이라는 위서가 나돌아서 반유대주의 진영에서 널리 읽혔는데, 그 책도 히틀러가 러시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히틀러의 세계관 안에서 반유대주의와 반마르크스주의를 하나로 묶는 촉매제 역할을 했고, 이렇게 해서 한번 만들어진 고정 관념은 그 뒤로 두 번 다시 없어지지 않았다. 분열과 불화를 막으려면 모든 정열을 하나에 쏟아 붓고 오직 하나의 적만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히틀러는 노골적으로 말했다. 자고로 위대한 지도자는 대중의 관심을 오직 하나의 적에 묶어 둘 줄 아는 사람"이라고 히틀러는 선언했다. 당시 독일 내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1933년 기준으로 독일에 0.76%밖에 없었다. 세상이 각박할 때는 이렇게 얼마 안되는 소수 집단이 기업과 예술, 전문직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들에 대한 시기심과 적개심을 부추기기가 너무나도 쉬웠다.

    히틀러 연설의 핵심은 단순과 반복이었다. 군중의 민족 의식을 일깨운다, 1918년의 엄청난 배신을 뒤엎는다, 독일 내부의 적과 특히 유대인을 제거한다, 독일 영토 밖에서 힘을 겨루어 세계 열강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물질적 정신적 기반을 새롭게 다진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1919년과 1920년에 히틀러의 연설을 들으러 몰려든 군중둘은 세련된 이론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분노와 원한, 증오의 불길을 피울 수 있는 간단한 구호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 즈음의 히틀러는 스스로를 영웅을 위한 선동가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의회에서 어느 정도의 세력을 얻은 뒤에도 선전·선동에만 집중하며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회피하곤 했다. 그러나 이후 나치당의 성공을 보며 서서히 과대망상에 빠지면서 권력욕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이 곧 독일을 구할 영웅이라고 믿게 된다. 히틀러는 나치당 초기 당재정이 빈약할 때는, 자기의 연설을 들으러 오는 청중들에게 광고를 하는 방법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니까 한창 신나게 자기의 정견을 늘어놓은 다음에, 상품홍보활동이나 광고를 하고, 업체의 돈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의 연설은 청중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고 한다. 히틀러의 득세 이후 정세가 불안해지자 영국이 독일에 스파이를 심었는데, 그 스파이가 '그의 연설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고 보고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사투리(오스트로바이에른어)가 워낙 심해서 목소리만 놓고 보면 별로 듣기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실제로는 연설 이전에 행해지는 다양한 효과들에 의해 히틀러의 연설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히틀러 본인도 제스처나 그런 것들을 연구해서 활용하기도 했다. 청중을 사로잡았다던 히틀러의 연설은 대부분 이런 행사들의 마지막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과정을 세심하게 설계해서 연설이 먹히게 하는 것도 재능이긴 재능이다.

    한편 이 히틀러의 연설은, 전후 비 독일어권 사람들의 독일어에 대한 편견을 쌓는데 크게 기여했다. 히틀러의 연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게 되면서 자연히 히틀러의 억양과 발음 등이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어는 매우 딱딱하고 강한 발음의 언어란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북한의 뉴스나 선전물 등을 접한 외국인들이 한국어가 딱딱하고 강한 어조를 가진 언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히틀러가 선동가로서의 명성을 가지게 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레니 리펜슈탈이다. 레니 리펜슈탈은 영화제작자/감독으로 히틀러의 연설 영상을 편집하여 배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혹자에 의하면 히틀러의 연설 자체는 지겹고 길고 두서가 없지만 리펜슈탈의 연출과 편집에 의해 일반 대중들에게 매우 설득력 있는, 공감이 가는 선동가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아돌프 히틀러/생애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싫어해서 유대인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자기의 인기도를 올리기 위해 유럽 전역에 퍼져있던 반유대주의를 이용한 것입니다.

    반유대주의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하여 뿌리깊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혐오 감정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원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였다고 해요. 히틀러는 유대인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경제가 붕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유대인들이 독일 경제를 재건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생각한 것이죠. 당시 유대인들이 독일의 민간은행 절반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독일 경제를 좌우했었는데 히틀러는 유대인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 의사의 실수로 모친이 죽었다는 썰이 있는데 이것도 추측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