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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한거북이
공손한거북이21.12.06

북한에 남아있는 문화재는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북한에도 잘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들이 있을텐데요.

북쪽이다보니 고구려관련 문화재와 조선의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북한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문화재에는 어떤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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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거북이놔두루미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세계유산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북한의 세계유산을 일컫는다. 총 2건의 문화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2004년 평양평안남도 일대에 걸쳐있는 고구려 고분군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후 2013년 6월 23일, 개성 일대의 만월대, 성균관, 선죽교표충비, 왕건왕릉, 공민왕릉을 비롯한 고려왕릉군과 개성의 유적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안녕하세요. 오파드입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문화재를 알고싶어하시는데
    대표적으로 고려왕건의 무덤인 왕건릉이 있습니다.
    고려의 대한 문화재 대부분이 북한에 방치중이고
    부셔지고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재빵야빵야입니다.

    1. 선죽교

    개성 선죽동에 있는 돌로 만든 다리이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부하들에게 죽음을 당한 곳으로, 비가 오면 핏자국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의 돌다리. 국보급 유산으로 개성시 선죽동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노계천에 있다.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으나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 대나무가 났기 때문에 그 이름을 선죽교로 고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다리 난간의 너비는 2.54m, 길이는 6.67m.

    2. 만월대

    개성의 송악산 기슭에 있는 고려 시대의 왕궁터로 지금은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받침돌만 남아 있다.

    만월대의 가장 큰 풍수적 특징은 건물을 배치할 때 인위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자연 지형의 흐름을 따르려 했다는 것이다.

    송악산 남쪽기슭에 있는 고려의 왕궁 자리로 왕궁의 넓이는 125만㎡. 원래 달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에서 망월대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이 전해오면서 만월대로 되었다고 한다. 오늘 여기에는 궁터와 주춧돌만이 남아있다

    3. 공민왕릉

    만수산 언덕에 있으며, 고려 말에 왕권을 크게 떨쳤던 공민왕의 무덤으로, 규모가 웅장한 고려 시대의 대표적 왕릉이다.

    개성에서 서쪽으로 약 11km 떨어져있다. 고려 31대 공민왕이 살아있을 때에 만든 왕과 왕비의 쌍무덤. 공민왕은 44살까지 살았는데 왕비가 죽은

    다음 7년동안 이 무덤을 건설. 무덤의 아래쪽에는 구름무늬와 12지신을 부각한 화강암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그밖에 돌로 조각한 범과 양을 세워놓았다

    4. 나성

    거란의 침입이 있은 뒤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현종이 이가도에게 명하여 축성하였으며, 착공 21년 만인 1029년(현종 20) 완공하였다. 규모는 송악산 남쪽 사면과 남산을 둘러 시가지 전체를 포위하듯이 쌓았으며, 둘레길이는 2만 9700보에 나각이 1만 3000칸에 이르렀다.

    5. 숭양서원

    고려 말의 학자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1573년에 세운 서원이다.

    개성시 선죽동 소재. 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었다.

    6. 현화사 7층 석탑

    고려 초기의 탑으로, 규모가 웅대하고 탑을 쌓은 솜씨가 세련되었다.

    개성시 장풍군 월고리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탑. 국보급 유산. 현화사는 1018년에, 현화사 탑은 1020년에 세워졌다. 높이는 8.64m로 고려 시대 탑으로서는 큰 편에 속한다. 각 탑신마다 불상과 연꽃을 조각했으며 기단부(받침대)에 벽돌처럼 돌을 쌓은 것이 이색적이다. 현재 현화사는 없어지고 그 터에 이 탐과 현화사비, 당간지주, 돌다리 등만이 남아 있다.

    7. 을밀대

    평양특별시 중구역 금수산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누정.

    사허정이라고도 한다. 북한문화재 사적 제7호이다. 을밀대라는 이름은 옛날에 을밀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서 생겼다고도 하고, 고구려 때 이곳을 지킨 을밀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의 내성을 쌓으면서 그 북장대로 세운 것으로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171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모란대와 맞선 석루 위에 있어서 평양시내를 바라볼 수 있으며 동쪽은 낭떠러지로 대동강에 면하고 북쪽으로 현무문이 내려다보인다. 을밀대의 축대는 고구려의 축성술이 남아있는 대로서 높이는 약 11m이다. 축대 위에 건립한 누정은 앞면 3칸(7.46m), 옆면 2칸(5.29m)에 2익공바깥도리식두공을 얹고 겹처마의 합각지붕을 이었다.

    8. 보통문

    평양특별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성문.

    지정번호 북한 국보 제2호

    소재지 평양 중구역 보통문동

    시대 고구려시대

    크기 홍예문 높이 4.55m, 너비 4.4m, 문루 정면 3칸(14.8m), 측면 3칸(9.15m)

    종류 성문

    북한 국보 2호이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을 쌓을 때 성의 서문으로 세웠으며, 현재 건물은 조선시대인 1473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이 문은 평양성 서북쪽 방향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국방상·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요시되었다.

    2층 누각을 갖춘 성문으로 축대는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고, 축대에는 높이 4.55m, 너비 4.4m의 홍예문(무지개문)이 있다. 문루는 2층으로 정면 3칸(14.8m), 측면 3칸(9.15 m)이다. 바깥기둥은 모두 1층 지붕에 이어지고 안쪽의 네 기둥은 1층에서 2층까지 관통하여 세웠다.

    바깥기둥과 안기둥 사이에 연결된 툇보 위에는 짧은 2층 기둥이 놓여 있다. 두공은 1·2층 안팎이 모두 3포로 되어 있고, 두공첨차의 간격은 바깥쪽보다 안쪽이 더 크다. 다른 성문들에 비하여 전체 높이가 조금 낮고 1층 면적에 비하여 2층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다.

    또한 측면에서 1층 양쪽 바깥기둥의 밑둥과 마룻도리를 연결하는 3각형, 그리고 정면에서 축대바닥 양쪽 끝과 문루의 용마루 중심을 연결하는 3각형은 거의 정3각형에 가깝게 되어 있어 더욱 장중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현존하는 한국 성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구려의 건축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9. 평양성

    평양특별시 중구역과 평천구역에 있는 고구려 후기의 도성.

    지정번호 북한 사적급 문화재 제1호

    소재지 북한 평양 중구역과 평천구역

    시대 고구려 후기

    종류 도성

    북한의 사적급 문화재 제1호이다. 평지성의 장점과 산성의 장점을 종합하여 축성하였다. 내성·외성·북성·중성으로 이루어졌으며, 성벽의 길이는 23km이다. 내성은 대동문 아래에서 서북쪽으로 남산고개를 지나 만수대까지이고, 외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을 둘러싼 평지성이며, 북성은 만수대 북쪽으로 모란봉을 둘러싼 부분이고, 내성 남쪽으로 대동교에서 안산까지 연장된 성이 중성이다.

    이중 평지성인 나성 부분은 시가지를 형성하였던 곳이다. 성벽은 돌로 쌓거나 돌과 흙을 섞어 쌓기도 하였는데, 능선에서는 외면 축조방법을, 평지에서는 양면 축조방법을 사용하였다.

    성문은 내성과 중성 및 외성에서는 각 4개의 문을 냈으며, 북성에는 남쪽과 북쪽에만 냈고, 외부와 통하는 중요한 성문들에는 옹성을 쌓았다. 성안에는 7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내성의 을밀대와 북성의 최승대이다. 이 내성의 성벽에서는 명문이 있는 성석편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축성연대와 축성에 5부 사람들이 동원된 사실 및 공사의 담당 구간, 담당자의 이름과 관직이 알려졌다.

    10. 금장암 사자탑
    북한 국보급 제45호. 높이 3.87m. 금장암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11. 대동문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1호이다. 높이 19m, 축대높이 6.5m, 길이 26.3m, 폭 14.25m이다. 문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석축 위에 2층으로 된 누각을 갖.추고 있다


    12. 동수묘

    북한 국보 제28호. 안악 제3호분이라고도 하며, 북한의 지정 명칭은 ‘하무덤’이다. 높이 7m, 남북 길이 33m, 동서 길이 약 30m에 이르는 방대원형이다


    13. 보통문
    북한 국보 2호이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을 쌓을 때 성의 서문으로 세웠으며, 현재 건물은 조선시대인 1473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14. 천왕지신총
    북한 국보 제19호. 고분의 구조는 널방이 방형으로 남북 약 3m, 동서2.8m이며, 앞방은 복도처럼 생겼는데 동서 약 6.5m, 남북 약 1.6m이다.


    15. 쌍영총
    북한 국보급 제12호. 쌍기둥무덤이라고도 한다. 남향으로 반지하에 구축한 '여(呂)'자형 두방무덤이다. 앞방 남벽 중앙에 널길이 있다


    16. 안악이호분
    북한 국보급 제27호. 1949년과 1957년 두 차례에 걸쳐 조사하였다. 안악일호분(북한국보급 26)의 북쪽 400m 거리의 나지막한 언덕에 있다,

    제 답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꾀꼬리입니다.북한의 국보유적 제 1호는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옮기면서 쌓은 평양시내의 평양성이며 2호는 고구려 왕궁터인 안학궁성터이며 3호와 4호는 평양성 성문으로 세워진 보통문과 대동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