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연산군은 폐위된후 어떠한 생을 살았나요?

우리나라에서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은 잔혹한 짓을 많이 했는데요. 결국 반정으로 폐위가 되었지요.연산군은 폐위된후 어떠한 생을 살았나요?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의 유배가 되고, 유배 도중에 연산군의 아들 폐세자가 사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살설, 역병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31세의 나이로 죽게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에서 군으로 강등된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가서 몇 달만에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절대 왕권으로 흥청망청 놀고 먹으며 제멋대로 즐기던 양반이 한순간에 몰락하고 초라한 유배생활을 해야 하는 본인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얻었을 수 있습니다.

      또, 중종반정 후 연산군의 어린 자식들도 대부분 사사되거나 비참한 미래를 맞이 하는데 이 사실이 연산군에게 알려졌을지 모르지만 알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정신적 충격 또한 사망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록에 연산군이 유배지에서 11월에 역질에 걸려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당시 역질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배되있었던 연산군을 보필하고 함께 연산군 의중을 들었던 나인들과 유배지를 지키고 있었던 군졸들 중 의아하게도 한 명이라도 전염됐었다던가 하는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독살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종반정 후 폐위된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현으로 옮겨졌다. 9월 26일에는 두 아들이 함께 사사되었고, 연산군도 11월 8일 역질로 사망하였다. 본래 강화도 교동에 장사지냈으나, 1512년(중종 7) 거창 군부인 신씨가 임금에게 양주 해촌(海村)으로 이장하기를 청하자 중종이 허락하고 왕자의 예로 정중히 개장하도록 하였다.

      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산군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교동도에 유배되어, 2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병사 또는 자살로 추정된다고 하네요.